희망제작소는 지난 6월 음식물순환프로젝트 일환으로 시민들에게 지렁이를 무료로 분양했어요(숲과나눔의 2025 풀씨사업 지원). 약 3개월 간 시민들은 작고 조용하지만 환경엔 큰 변화를 만들어주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나의 집,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나오는 음식물의 처리를 '지렁이'에게 맡기는 거죠.🐛💚 그 여정에 함께 한 분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나눕니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니고, 토끼도 거북이도 아니고 지렁이라고?”
나에게 반려동물이 생겼다고 하자 친구들의 반응이다. 그래. 지렁이란다. 나도 내가 지렁이와 같이 살게 될 줄은 몰랐어. 하긴, 친척이나 지인들이 사는 시골집에 갔다가 땅을 파면 지렁이뿐이니? 개수도 다양한 다리를 가진 온갖 생물체들이 꼬물거리며 나타났고 그 중엔 지렁이도 당연히 있었지. 우리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흙을 함부로 밟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도 잘 모르고,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더 모르는지!


지렁이를 분양 받아 음식물 처리 기록 인증 ⓒ박경현
나는 식물도 동물도 모두 좋아한단다. 아니, 그리 싫어할만 한 걸 아직 안 만난 거라고 해두자. 그런데 얼마전부터 아무리 동식물을 사랑해도 도시의 아파트에서 키우는 게 생태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마당 넓은 땅집에서 살지 않을 바엔 강아지나 고양이는 키우지 말자고 다짐했기에 산책 중에 만나는 남의 집 강아지를 게걸스레 훔쳐보고 만족하고 있지. 식물도 마찬가지야. 동생은 나에게 “언니는 시들어가는 식물도 살리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졌다면 나는 잘 살던 식물도 죽이는 마이너스의 손이야.”라고 할 정도로 나의 ‘green thumb’을 자부하며 집에 무성한 초록이들을 키우고 있었거든.
그런데 식물학자 신혜우(『이웃집 식물상담소』, 다산북스 2022) 님의 글을 읽고 나서는 좁은 화분 속에 키우는 식물들을 보는 게 좀 죄송스럽더라. 그 아이들도 이슬과 비를 맞으며 흙에 뿌리내리고 싶지 않겠어? 그래서 집에 있던 화분들 대부분을 당근에 나눔하거나 이웃집에 드리고 나는 지금 조그만 다섯 개의 화분만(그건 포기가 안 돼 ㅠ.ㅠ) 데리고 있어. 그런데 지렁이를 플라스틱 통에 담아 아파트 베란다에 두고 내 음식쓰레기 처리를 시키다니! 쫌, 아니 많이 고민이 되었어. 하지만 내가 또 누구니?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왕성하잖아? 그래서 버스를 타고 땀을 흘리며 희망제작소를 찾아가 지렁이를 분양받아 왔어.
애칭을 지으라 하기에 ‘쮸릉이’라고 써 붙이고 고이 모셔다 뒷베란다 그늘진 곳에 모셨지. “요로시코 오네가이시마스~(일본어로 ‘잘 부탁합니다’라는 뜻의 첫인사말)” 왜 쮸릉이냐고? 뭐 그냥 경음을 쓰면 좀 귀엽지 않나? 꼬, 빠, 따, 쪼, 뭐 그런 음소들이 주는 느낌이 있잖아. 데려오고 처음 몇일은 아침마다 “쮸릉아, 굿 모닝~”하며 반려동물님께 안부인사도 드렸어. 습기가 적은지 너무 많은지, 너무 덥지는 않을지 자리도 살펴드리고. 일주일에 한 번 식사를 주면 된다고 해서 나의 주 식재료인 채소, 과일껍질을 다져서 넣어주었지. 선물로 주신 쪼꼬만 무동력 다지기가 아주 기특하더군. 고무줄처럼 손잡이를 쭉 잡아당기는 맛에 공연히 그만 갈아도 될 것을 더 많이 갈곤 한 것 같아. 오래 전 시골집에 잠시 머물 때 쥐가 집에 들어왔었어. 그런데 슈퍼에서 산 쌀과 과자들은 그냥 두고 직접 도정한(선물받은) 쌀과 목찜질 패드 속의 허브만 파먹었더라고. 그래서 지렁이가 싫어한다는 단백질 빼고 가공식품도 빼고 순 친환경 야채와 우리 땅 과일 위주로 진상을 했다니까,
두 서너 주 쯤 지나며 밴드에 올라오는 글들을 힐끔거렸어. 다른 분들은 엄청 먹이를 많이 주시더군. 실지렁이가 보인다고도 하고 토분에 옮겼다고도 하고. 내가 소식하는 편이라 그런지 아니면 손이 너무 작은 건지 다른 분들에 비해 너무 조금 주나 싶었어. 그런데 희망제작소에서 분양받을 땐 정말 이삼십 마리 정도 받아온 것 같은데 한 달쯤 지나고 보니 몇 마리 안 보이네. 오잉? 이게 무슨 일이지? 먹이가 적었나? 한여름이라 날이 너무 더운데다 우리집 뒷베란다가 서향이다보니 저녁때 더 뜨거워서 얘들이 익어버렸나? 걱정이 되었어. 공연히 얘들을 데려와서 내가 다 죽게 만들었나 싶어 슬프고 속상했어. 밴드에 어떻게 글을 올리려니 창피하고 자신이 없어서 눈치만 보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비 예보가 있기에 비 오기 전에 산책하려고 이른 아침에 뒷산을 올랐어. 올라가다 보니 비닐 봉지 하나가 길에 있더라. 내가 또 누구니. 이런 거 못 참잖아. ‘에이, 내가 가져다 버려야지.’하고 집어들었어. 그런데 이것이 바로 신의 계시였나봐. 10분쯤 걷다가 길 한 가운데서 지렁이를 발견한 거야. 오! 반가워라! 모셔가려고 비닐봉지에 지렁이를 담으려는데 차마 손으로 집지는 못하고 버벅대자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와서 나무조각으로 툭 쳐서 비닐봉지에 슛! 골~인을 시켜주셨어. 하하... 내가 메시와 손흥민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운동신경은 정말 다른가봐. 지렁이가 비닐봉지 속에서 잘 살아있는지 신경쓰면서 집에 돌아와 쮸릉이 집에 새식구를 들여주었지. 아니, 그런데, 흙을 뒤적이다보니 두 마리가 꿈틀거리는 거야. 오, 예스! 너희들 살아있었구나! 고맙다, 고마워. 사이좋게 잘 지내라~. 그런데 몇 시간 후 우연히 뒷베란다에 나갔더니 이 녀석이 가출을 감행했더라구! 그것도 어찌 알고 배수구를 향해서. 산에서 데려왔더니 야생성이 살아있나봐. 다시 쮸릉이 집에 고이 돌려보내고 망사천으로 뚜껑을 덧씌웠지. 많이 미안했어.
개체수가 몇 마리 안 남으니 더 귀하게 여겨졌어. 그날부턴 그늘도 더 신경쓰고 먹이도 더 많이 주었어. 한번에 100g을 넣기도 했지. 서너 마리가 먹는 양으로는 1주일에 한 번 약 100g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 그런데 이건 내가 만드는 음식쓰레기의 4분의 1정도밖에 안 되는 양이야. 여름이고 과일껍질이 많이 나와서 음식쓰레기가 많이 나왔을까? 음식을 그리 많이 먹지 않고 식재료를 거의 다 소비하는 여성 노인 1인가구가 만들어내는 음식쓰레기조차 감당하지 못한다면 지렁이가 ‘음쓰처리용’으로 과연 쓸모가 있는 걸까 의심이 들었어. 개체수가 늘고 통이 더 크다면 처리가 가능할까? 다음에 다시 희망제작소에 가서 지렁이를 더 분양받아 와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음식물쓰레기를 생태적으로 처리하는 좋은 일이라는 자부심보다 지렁이라는 생물을 비생태적 환경에 가두고 키운다는 죄책감이 더 크게 고개를 드는 걸 어쩔 수 없네.

입추가 지나니 거짓말처럼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네. 쮸릉이들도 좀더 살기 좋아지겠지? 먹이를 주려고 흙을 뒤적여보면 저 밑바닥에 쮸릉이가 보여. 행여 다칠까봐 깜짝 놀라 얼른 흙으로 살살 덮어주고 손을 떼지. 아직도 개체수는 서너마리쯤? 정말 내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지. 번식을 하기보다 더 줄었으니. 얘들아, 미안하다 ㅠ.ㅠ 그런데 음식쓰레기 중에 어느 과일의 씨앗이 발아했는지 뚜껑을 열었을 때 콩나물같은 싹이 여기저기 솟아나 세로로 선 실지렁이들(바다 속 garden eel)처럼 살랑대고 있더라고. 아마도 방울토마토 하나 물러진 것을 갈아넣은 데서 싹이 난 것 같아. 와, 어둠 속에도 식물이 싹을 틔우는구나! 아주 작은 날파리도 날고 아주아주 더 작은 실지렁이도 보였어. 척박한 플라스틱 통 안에도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야.
요즘은 당근에 ‘토분’, ‘항아리’를 검색하고 있어. 집에 차가 없으니 먼 데서 들고 올 수도 없고 택시로 실어오자니 새 것을 사는 게 나을 것 같고 고민이 되는구만. 쮸릉이가 한 마리라도 살아있는 한 좀더 살만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말이야. 플라스틱 통 말고 토분으로 이사시켜 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다음주부턴 해외여행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우게 되어서 따로 사는 딸에게 집에 들려서 내 반려동물을 돌봐달라고 부탁해야 해. 잘해줄지 모르겠어. 식물 화분에도 물을 줘야 하고. 농사꾼이 오랫동안 집을 못 비우는 것처럼 도시의 반려동식물과 함께 사는 집사들도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 생명과 함께 하는 일은 기계나 장난감을 소유하는 것과는 다르니까. 나는 아직도 생태적 음식물쓰레기 처리 실험이라는 좋은 의도에 참여한다는 자부심과 지렁이를 잘 돌보지 못해 생물을 학대하는 인간이 된 것같은 죄책감 사이에서 엉거주춤 지내고 있네.
내 죄책감을 덜어줄 아이디어가 나오면 좋겠어. 예를 들어, 아파트 건물 사이 화단 한 구석에 지렁이 생육 상자를 만들어 몇몇 사람들이 동아리를 운영하는 거지. 함께 음식쓰레기를 버리며 지렁이를 돌보다가 지렁이똥으로 생긴 퇴비흙은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철따라 파티를 하고 같이 먹은 채소나 과일껍질을 다져서 지렁이들에게도 나눠주고 그럼 어떨까. 만약 그렇게 되어서 우리집 쮸릉이들이 땅으로 이사간다면 인간의 귀에는 안 들리겠지만 “얏호!”하며 외치며 좋아서 꿈틀꿈틀 춤추지 않을까?
글/사진: 박경현

희망제작소는 지난 6월 음식물순환프로젝트 일환으로 시민들에게 지렁이를 무료로 분양했어요(숲과나눔의 2025 풀씨사업 지원). 약 3개월 간 시민들은 작고 조용하지만 환경엔 큰 변화를 만들어주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나의 집,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나오는 음식물의 처리를 '지렁이'에게 맡기는 거죠.🐛💚 그 여정에 함께 한 분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나눕니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니고, 토끼도 거북이도 아니고 지렁이라고?”
나에게 반려동물이 생겼다고 하자 친구들의 반응이다. 그래. 지렁이란다. 나도 내가 지렁이와 같이 살게 될 줄은 몰랐어. 하긴, 친척이나 지인들이 사는 시골집에 갔다가 땅을 파면 지렁이뿐이니? 개수도 다양한 다리를 가진 온갖 생물체들이 꼬물거리며 나타났고 그 중엔 지렁이도 당연히 있었지. 우리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흙을 함부로 밟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도 잘 모르고,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더 모르는지!
지렁이를 분양 받아 음식물 처리 기록 인증 ⓒ박경현
나는 식물도 동물도 모두 좋아한단다. 아니, 그리 싫어할만 한 걸 아직 안 만난 거라고 해두자. 그런데 얼마전부터 아무리 동식물을 사랑해도 도시의 아파트에서 키우는 게 생태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마당 넓은 땅집에서 살지 않을 바엔 강아지나 고양이는 키우지 말자고 다짐했기에 산책 중에 만나는 남의 집 강아지를 게걸스레 훔쳐보고 만족하고 있지. 식물도 마찬가지야. 동생은 나에게 “언니는 시들어가는 식물도 살리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졌다면 나는 잘 살던 식물도 죽이는 마이너스의 손이야.”라고 할 정도로 나의 ‘green thumb’을 자부하며 집에 무성한 초록이들을 키우고 있었거든.
그런데 식물학자 신혜우(『이웃집 식물상담소』, 다산북스 2022) 님의 글을 읽고 나서는 좁은 화분 속에 키우는 식물들을 보는 게 좀 죄송스럽더라. 그 아이들도 이슬과 비를 맞으며 흙에 뿌리내리고 싶지 않겠어? 그래서 집에 있던 화분들 대부분을 당근에 나눔하거나 이웃집에 드리고 나는 지금 조그만 다섯 개의 화분만(그건 포기가 안 돼 ㅠ.ㅠ) 데리고 있어. 그런데 지렁이를 플라스틱 통에 담아 아파트 베란다에 두고 내 음식쓰레기 처리를 시키다니! 쫌, 아니 많이 고민이 되었어. 하지만 내가 또 누구니?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왕성하잖아? 그래서 버스를 타고 땀을 흘리며 희망제작소를 찾아가 지렁이를 분양받아 왔어.
애칭을 지으라 하기에 ‘쮸릉이’라고 써 붙이고 고이 모셔다 뒷베란다 그늘진 곳에 모셨지. “요로시코 오네가이시마스~(일본어로 ‘잘 부탁합니다’라는 뜻의 첫인사말)” 왜 쮸릉이냐고? 뭐 그냥 경음을 쓰면 좀 귀엽지 않나? 꼬, 빠, 따, 쪼, 뭐 그런 음소들이 주는 느낌이 있잖아. 데려오고 처음 몇일은 아침마다 “쮸릉아, 굿 모닝~”하며 반려동물님께 안부인사도 드렸어. 습기가 적은지 너무 많은지, 너무 덥지는 않을지 자리도 살펴드리고. 일주일에 한 번 식사를 주면 된다고 해서 나의 주 식재료인 채소, 과일껍질을 다져서 넣어주었지. 선물로 주신 쪼꼬만 무동력 다지기가 아주 기특하더군. 고무줄처럼 손잡이를 쭉 잡아당기는 맛에 공연히 그만 갈아도 될 것을 더 많이 갈곤 한 것 같아. 오래 전 시골집에 잠시 머물 때 쥐가 집에 들어왔었어. 그런데 슈퍼에서 산 쌀과 과자들은 그냥 두고 직접 도정한(선물받은) 쌀과 목찜질 패드 속의 허브만 파먹었더라고. 그래서 지렁이가 싫어한다는 단백질 빼고 가공식품도 빼고 순 친환경 야채와 우리 땅 과일 위주로 진상을 했다니까,
두 서너 주 쯤 지나며 밴드에 올라오는 글들을 힐끔거렸어. 다른 분들은 엄청 먹이를 많이 주시더군. 실지렁이가 보인다고도 하고 토분에 옮겼다고도 하고. 내가 소식하는 편이라 그런지 아니면 손이 너무 작은 건지 다른 분들에 비해 너무 조금 주나 싶었어. 그런데 희망제작소에서 분양받을 땐 정말 이삼십 마리 정도 받아온 것 같은데 한 달쯤 지나고 보니 몇 마리 안 보이네. 오잉? 이게 무슨 일이지? 먹이가 적었나? 한여름이라 날이 너무 더운데다 우리집 뒷베란다가 서향이다보니 저녁때 더 뜨거워서 얘들이 익어버렸나? 걱정이 되었어. 공연히 얘들을 데려와서 내가 다 죽게 만들었나 싶어 슬프고 속상했어. 밴드에 어떻게 글을 올리려니 창피하고 자신이 없어서 눈치만 보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비 예보가 있기에 비 오기 전에 산책하려고 이른 아침에 뒷산을 올랐어. 올라가다 보니 비닐 봉지 하나가 길에 있더라. 내가 또 누구니. 이런 거 못 참잖아. ‘에이, 내가 가져다 버려야지.’하고 집어들었어. 그런데 이것이 바로 신의 계시였나봐. 10분쯤 걷다가 길 한 가운데서 지렁이를 발견한 거야. 오! 반가워라! 모셔가려고 비닐봉지에 지렁이를 담으려는데 차마 손으로 집지는 못하고 버벅대자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와서 나무조각으로 툭 쳐서 비닐봉지에 슛! 골~인을 시켜주셨어. 하하... 내가 메시와 손흥민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운동신경은 정말 다른가봐. 지렁이가 비닐봉지 속에서 잘 살아있는지 신경쓰면서 집에 돌아와 쮸릉이 집에 새식구를 들여주었지. 아니, 그런데, 흙을 뒤적이다보니 두 마리가 꿈틀거리는 거야. 오, 예스! 너희들 살아있었구나! 고맙다, 고마워. 사이좋게 잘 지내라~. 그런데 몇 시간 후 우연히 뒷베란다에 나갔더니 이 녀석이 가출을 감행했더라구! 그것도 어찌 알고 배수구를 향해서. 산에서 데려왔더니 야생성이 살아있나봐. 다시 쮸릉이 집에 고이 돌려보내고 망사천으로 뚜껑을 덧씌웠지. 많이 미안했어.
개체수가 몇 마리 안 남으니 더 귀하게 여겨졌어. 그날부턴 그늘도 더 신경쓰고 먹이도 더 많이 주었어. 한번에 100g을 넣기도 했지. 서너 마리가 먹는 양으로는 1주일에 한 번 약 100g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 그런데 이건 내가 만드는 음식쓰레기의 4분의 1정도밖에 안 되는 양이야. 여름이고 과일껍질이 많이 나와서 음식쓰레기가 많이 나왔을까? 음식을 그리 많이 먹지 않고 식재료를 거의 다 소비하는 여성 노인 1인가구가 만들어내는 음식쓰레기조차 감당하지 못한다면 지렁이가 ‘음쓰처리용’으로 과연 쓸모가 있는 걸까 의심이 들었어. 개체수가 늘고 통이 더 크다면 처리가 가능할까? 다음에 다시 희망제작소에 가서 지렁이를 더 분양받아 와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음식물쓰레기를 생태적으로 처리하는 좋은 일이라는 자부심보다 지렁이라는 생물을 비생태적 환경에 가두고 키운다는 죄책감이 더 크게 고개를 드는 걸 어쩔 수 없네.
입추가 지나니 거짓말처럼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네. 쮸릉이들도 좀더 살기 좋아지겠지? 먹이를 주려고 흙을 뒤적여보면 저 밑바닥에 쮸릉이가 보여. 행여 다칠까봐 깜짝 놀라 얼른 흙으로 살살 덮어주고 손을 떼지. 아직도 개체수는 서너마리쯤? 정말 내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지. 번식을 하기보다 더 줄었으니. 얘들아, 미안하다 ㅠ.ㅠ 그런데 음식쓰레기 중에 어느 과일의 씨앗이 발아했는지 뚜껑을 열었을 때 콩나물같은 싹이 여기저기 솟아나 세로로 선 실지렁이들(바다 속 garden eel)처럼 살랑대고 있더라고. 아마도 방울토마토 하나 물러진 것을 갈아넣은 데서 싹이 난 것 같아. 와, 어둠 속에도 식물이 싹을 틔우는구나! 아주 작은 날파리도 날고 아주아주 더 작은 실지렁이도 보였어. 척박한 플라스틱 통 안에도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야.
요즘은 당근에 ‘토분’, ‘항아리’를 검색하고 있어. 집에 차가 없으니 먼 데서 들고 올 수도 없고 택시로 실어오자니 새 것을 사는 게 나을 것 같고 고민이 되는구만. 쮸릉이가 한 마리라도 살아있는 한 좀더 살만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말이야. 플라스틱 통 말고 토분으로 이사시켜 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다음주부턴 해외여행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우게 되어서 따로 사는 딸에게 집에 들려서 내 반려동물을 돌봐달라고 부탁해야 해. 잘해줄지 모르겠어. 식물 화분에도 물을 줘야 하고. 농사꾼이 오랫동안 집을 못 비우는 것처럼 도시의 반려동식물과 함께 사는 집사들도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 생명과 함께 하는 일은 기계나 장난감을 소유하는 것과는 다르니까. 나는 아직도 생태적 음식물쓰레기 처리 실험이라는 좋은 의도에 참여한다는 자부심과 지렁이를 잘 돌보지 못해 생물을 학대하는 인간이 된 것같은 죄책감 사이에서 엉거주춤 지내고 있네.
내 죄책감을 덜어줄 아이디어가 나오면 좋겠어. 예를 들어, 아파트 건물 사이 화단 한 구석에 지렁이 생육 상자를 만들어 몇몇 사람들이 동아리를 운영하는 거지. 함께 음식쓰레기를 버리며 지렁이를 돌보다가 지렁이똥으로 생긴 퇴비흙은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철따라 파티를 하고 같이 먹은 채소나 과일껍질을 다져서 지렁이들에게도 나눠주고 그럼 어떨까. 만약 그렇게 되어서 우리집 쮸릉이들이 땅으로 이사간다면 인간의 귀에는 안 들리겠지만 “얏호!”하며 외치며 좋아서 꿈틀꿈틀 춤추지 않을까?
글/사진: 박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