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우리 집 지렁이 용왕 님 🐛💚

2025-09-15

희망제작소는 지난 6월 음식물순환프로젝트 일환으로 시민들에게 지렁이를 무료로 분양했어요(숲과나눔의 2025 풀씨사업 지원). 약 3개월 간 시민들은 작고 조용하지만 환경엔 큰 변화를 만들어주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나의 집,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나오는 음식물의 처리를 '지렁이'에게 맡기는 거죠.🐛💚  그 여정에 함께 한 분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나눕니다.


지렁이와 함께 산 지 어느새 세 달이 되었다. 처음 밥을 준 날의 기록을 찾아보았다. 빛을 싫어하는 지렁이를 위해 플라스틱 통에 색지를 둘러주고, 29g의 사과 자투리를 잘게 갈아주었다고 적혀있었다. 함께 올린 사진에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정성껏 갈아놓은 지렁이 밥이 담겨있었다. 듬성듬성 가위로 잘라주는 요즘과는 달리 긴장되고 설레던 순간의 기억이 금새 떠올랐다.

지렁이를 키워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건 일 년쯤 되었다. 인간이 지구를 놀라운 속도로 망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죄의식에서 출발한 생각이었다.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다보니 어 느 순간부터 매일 쌓이는 음식물 쓰레기가 신경 쓰였다. 부피를 줄여보려고 일부러 음식물통에 넣고 상하게 둔 적도 있었는데,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어느 날, 마르쉐 농부시장에서 갔다가 지렁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채소껍질을 모으는 걸 보았고, 나도 지렁이로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하면 꾸려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여전히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다양한 방법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겠지만, 먹고 남은 쓰레기라도 내 힘으로 처리해보고 싶었다. 그걸 지렁이로 한다는 게 너무 귀엽고, 생명력 있게 느껴졌다.

<희망제작소>에서 하는 지렁이 함께 키우기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마음은 있지만, 시작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너무 좋은 기회였다. 신청만 하면 사육통과 저울, 다지기 같은 준비물도 주고 지렁이 키우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나는 쓰던 김치통이 있어 가져갔는데, 뚜껑에 숨구멍을 뚫어주었다. 워크숍 날에는 맛있는 비건 도시락도 제공됐다. 돌이켜봐도 정말 아낌없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아, 잊을 뻔했는데 지렁이 키우기를 마친 지금은 완주를 축하하는 수박이 배송중이다.

지렁이 키우기 워크숍에 온 사람들은 비슷하고 또 다른 이유로 지렁이를 데리러 왔다. 학생들과 학교에서 함께 키우려는 분도 있었고, 이미 지렁이를 키우고 있는 분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지렁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괜히 가깝게 느껴졌다. 워크숍에서는 지렁이를 키우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지렁이 집을 먹는 곳과 쉬는 곳으로 나눠야 한다는 것부터 알맞은 온도와 습도, 지렁이를 키우면서 만나게 되는 애지렁이나 톡토기 같은 생명체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물이 많은 과일과 채소를 좋아하고, 매운 것과 신 것을 싫어하는 지렁이의 식성에 대해서 듣다보니 지렁이가 더 구체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지렁이가 조금 징그럽게 느껴졌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종이컵으로 꾸물대는 지렁이를 퍼담으면서 속으로 으아, 했던 기억이 난다.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서 힘을 내본 거라서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집에 오니 동생이 진짜로 지렁이를 데려왔느냐며 내 방에서만 키워달라고 하는 바람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498d6b64e6808.png8f1f937ff3917.png

지렁이를 분양 받아 음식물 처리 기록 인증 ⓒ연빈


지렁이 '용왕님'과 같이 살아가는 여정

집에 온 뒤부터는 연결되어 있다는 게 꽤나 중요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한 주에 한 번씩 밥 주는 걸 기록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금은 생활 속에 지렁이 키우기가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덜그럭대지 않는데, 초반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원해서 시작했더라도 새로운 일에 관심을 붙이고 익숙하게 만드는 게 쉽지는 않으니 말이다. 같이 키운다는 게 이런 순간을 잘 넘기게 도와주었다. 한 주, 두 주, 지렁이를 키우는 것을 공유하다보니 애정을 유지하기도 수월했다.

워크숍에서 배우긴 했지만, 각자가 놓인 환경에서 지렁이와 살아가는 길을 찾아가다보면 계속해서 의문점이 생겨난다. 음식을 언제 주어야할지, 온도나 수분은 적절한 건지 매번 고민이 됐다. 특히, 여름철에 플라스틱통에서 키우다보니 수분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럴 때마다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날벌레나 곰팡이와 같이 아직 생기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대처방안이나 예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아주 잘 아는 사람은 없어도, 머리를 맞대며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인상적인 일 중 빼놓을 수 없는 건 지렁이 알을 처음 발견했을 때다.😁수분이 많은 듯해 흙을 한번 뒤집어주는 중이었다. 노란빛이 도는 작고 투명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본적이 없는데, 한번 보이기 시작하니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게 뭐지, 하고 관찰하다 알이라는 걸 알고 꽤나 기뻤다. 지렁이들과 직접 소통할 수 없으니 잘하고 있는 건지 늘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알을 많이 낳은 걸 보니 지렁이들한테 이 집이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했다.

초반에는 지렁이에게 음식물쓰레기 500g 정도를 넣어주면 일주일정도 두고 먹었다. 그러다 알이 잔뜩 발견된 뒤로 지렁이 수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이틀이면 500g 정도를 먹는다. 이정도면 혼자 사는 사람의 음식물 쓰레기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요하다면 지렁이 집을 키워 더 많은 양을 처리해보는 것도 가능할 거다. 매번 음식물쓰레기를 땅에 묻으면서도 지렁이들이 이렇게 많은 양을 흔적도 없이 해치워주는 게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지렁이들을 소개하지 않았는데, 우리집 지렁이 이름은 용왕님이다. 동생이 내가 열심히 음식물쓰레기를 가는 걸 보고 용왕님한테 진상하는 거냐고 놀렸는데, 그 이름을 듣고 나니 지렁이에게 용왕님만큼 어울리는 이름도 없는 것 같았다. 이 이름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꼭 한 번 웃는다. 친구들은 왕관을 쓴 지렁이 캐릭터를 만들어서 동네에서 분변토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하면 어떠냐고도 했다. 옥토라는 이름을 크게 새기자며 용왕님 캐릭터를 그려주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지렁이를 키우는 일은 나뿐 아니라 주변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동안 지렁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던 친구들은 갑자기 주변에 지렁이 아이템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카페에 있는 지렁이 인형을 찍어서 보내주기도 했고, 지렁이 이모티콘이나 지렁이 스티커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아무도 지렁이와 그렇게 친하지 않았는데, 나를 통해 조금이나마 지렁이와 관계를 만든 것 같았다. 지렁이에 대해 알려주면 너무 훌륭한 지구 구성원이라며 놀랐다. 특히, 지렁이가 죽어서도 흙 안에서 녹아 없어져버린다는 부분에서는 다들 감탄했다.

지렁이를 키우면서 크게 변한 게 몇 가지 있다. 일단 지렁이가 징그럽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작은 숟가락을 삽처럼 이용해 땅을 파고 음식물쓰레기를 넣다보면, 지렁이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게 보인다. 이제는 그런 걸 보면 잘 지내고 있구나, 하고 안심한다. 오히려 보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처음 데려왔을 때, 그렇게 싫어하던 동생도 어느새 지렁이의 안부를 묻고, 궁금하다며 밥을 줄 때 옆에 앉아 지렁이를 보곤 한다.

또 다른 변화는 음식물이 썩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거다. 지렁이가 음식물을 먹으려면 부패가 되어야 한다. 음식물을 넣으면 처음에는 희고 작은 애지렁이가 잔뜩 생겨나서 음식물을 분해한다. 예전 같으면 징그럽다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자연의 당연한 움직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넣은 음식물이 물렁물렁해져야 지렁이들이 잘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썩는 과정에서 냄새가 나고, 끈적이는 액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사실 자연스러운 건데 깨끗하게 유통된 상품들에 길들여져 있어 더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도시의 삶이 어느 순간 발효나 균의 세계를 많이 밀어내버린 것 같다. 지렁이를 키우면서 흙과 지렁이, 썩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게 제법 좋은 일로 느껴진다.


흙과 지렁이, 썩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


흙과 지렁이를 가깝게 느끼는 마음은 벌레들에 대한 혐오도 조금씩 줄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벌레를 보면 소리를 지르거나 피하곤 하는데, 그게 지렁이에 대한 반응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 지렁이를 키우면서 평소에 더럽고 징그럽다고 뭉툭하게 생각해 온 세계에 마음이 열린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세계를 인간 기준에서 깨끗하게 만들려는 아이디어들이 끊임없이 지구를 파괴해왔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인간들이 매끄럽고 깔끔한 것을 선호할수록 자연은 원래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인간이 지구 안에서 다른 생명체들과 잘 살아가려면 지금과 다른,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 가야할 거다. 지렁이 키우는 일은 그리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았다.

지렁이를 키운다는 말에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함께 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친구 중 한 명은 내가 지렁이를 키운다고 하자 곧장 분양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음식물쓰레기를 혼자 처리하고 싶어 흙에 묻는 방식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때는 지렁이 개체수가 많지 않아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그 사이 지렁이들이 많아져 조만간 지렁이를 보내주기로 했다.

의외의 곳과 접속하기도 했는데, 동생의 러닝크루에서 지렁이에 관심을 보였다.😃 근황을 나누며 지렁이 이야기를 했는데, 다들 키워보고 싶었다고 했다는 거다. 이 분들께는 희망제작소의 자료들을 활용해 간단히 지렁이키우기 워크숍을 해드리기로 했다. 이런 반응을 만날 때마다 기운이 나고 어쩐지 마음의 뿌리가 단단해지는 거 같다.

아직 마음을 먹지 못한 사람들도 살면서 한번쯤은 지렁이를 키워보면 좋겠다. 꾸준히 키워나간다면 더 좋겠지만, 생활 리듬과 맞지 않아 오래 키우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다른 생명체를 바라보는 인간중심적인 시선을 흔들고, 부패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만드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일이 줄어드는 기쁨도 함께 맛보면서 말이다. 


글/사진: 연빈



희망제작소


주소 03978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92, 4층

대표 윤석인  |  사업자번호 101-82-14123

Tel. 02-3210-0909  |  Fax. 02-3210-0126

E-mail. hope@makehope.org  | 후원 KEB하나은행 271-910002-36004 (재)희망제작소

© makehope. All Rights Reserved.




희망제작소

주소 03978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92

대표 윤석인  사업자번호 101-82-14123

전화 02-3210-0909  팩스 02-3210-0126

이메일 hope@makehope.org

© 2024 Makehope. SITE BY 산책